벤저민 프랭클린의 자서전은 미국 문학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텍스트 중 하나입니다. 시어도어 파커가 극찬한 실용적 지혜의 결정체인가, 아니면 DH 로렌스가 날카롭게 비판한 억압적 도덕 체계인가. 이 작품을 둘러싼 200년간의 비평사는 단순한 문학 논쟁을 넘어, 미국적 가치관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합니다. 프랭클린이 구축한 수사학적 전략과 그것이 담고 있는 자본주의 윤리, 그리고 현대적 관점에서의 재평가까지, 이 자서전은 여전히 살아있는 논쟁의 장입니다.

미국적 가치의 원형으로서 프랭클린 자서전
시어도어 파커는 1870년 『역사 속 미국인들』에서 프랭클린에 대해 "그 누구도 미국에 그토록 풍부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라고 극찬했습니다. 파커가 주목한 것은 프랭클린이 단순히 사상을 제시한 것이 넘어, 그것을 제도로 조직하고 국가 운영을 이끌었다는 점입니다. 프랭클린의 자서전은 이러한 실천적 지혜의 집약체로서, "일상생활 속 실용적인 사람들의 개인적인 문제"를 다루는 교본이 되었습니다.
우드로 윌슨 대통령 역시 1901년 서문에서 이 자서전을 "비즈니스 복장을 한 편지들"이라고 표현하며, 미국인이라면 누구나 직면하는 "성장 과정을 자유롭게 하고, 그것들이 용이하고 신속하며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하는 과제"를 다룬 실용서로 규정했습니다. 이는 프랭클린의 자서전이 단순한 개인 회고록이 아니라, 미국적 성공의 청사진으로 기능했음을 의미합니다.
Leonard W. Labaree를 비롯한 예일대학교 출판부의 편집자들은 1964년 서문에서 "프랭클린과 같은 삶이 가능해지고, 그것을 담담하게 묘사할 수 있게 된 후에는 독립선언문이 훨씬 덜 혁명적으로 느껴지게 됩니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이는 프랭클린의 자서전이 독립선언문보다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미국 사회의 혁명성을 입증했다는 의미입니다. 미국 사회는 프랭클린이 잘하는 것들, 즉 근면 성실, 효과적인 글쓰기, 개선 계획 수립, 의견 차이 조정, 그리고 대중의 요구와 이익을 염두에 두고 공직을 수행하는 능력을 높이 평가했고, 자서전은 이러한 업적과 그것들을 가능하게 한 가치관, 그리고 습관들을 기록한 매뉴얼이 되었습니다. 한 비범한 인물이 어떻게 자신의 유산을 활용하여 새롭고 혁명적인 삶의 모델을 만들어냈는지를 보여주는 이 텍스트는, 미국적 자아실현의 원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실용주의 문체와 수사학적 전략의 이중성
프랭클린의 자서전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그의 독특한 수사학적 전략입니다. 겸손을 가장한 우위의 어조, 은유의 전환, 실용주의적 냉소, 그리고 결과 중심적 논리는 그의 문체를 관통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만약 프랭클린이 DH 로렌스에게 가상의 편지를 썼다면, 그는 아마도 이렇게 시작했을 것입니다. "당신의 유감에 공감하지만, 제가 제시한 것은 철조망이 아니라 지도입니다."
이러한 문체적 특징은 칼 L. 베커가 1931년 『미국 인물 사전』에서 지적한 프랭클린의 본질과 연결됩니다. 베커는 "프랭클린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진실하고 성실하며 충성스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에 완전히 헌신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어떤 생각은 전달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고, 어떤 날카로운 통찰력은 드러내지 않고 숨겨두었던 듯합니다." 이는 프랭클린이 독립선언문 작성을 맡지 못한 이유가 그가 그 안에 농담을 숨길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라는 일화와도 연결됩니다. 이 이야기에는 심오한 상징적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버너 W. 크레인은 1954년 『미국 전기 시리즈』에서 프랭클린의 이러한 특성을 더욱 명확히 분석했습니다. "프랭클린에 대해 사람들이 가장 의아해하는 점은 그가 마치 내면의 어떤 강요도 없는 듯 너무나 자주, 그리고 너무나 쉽게 한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전향했다는 점, 그리고 가장 중대한 인간적인 문제에 대해서조차 완전히 진지하게 임하기를 거부했다는 점"이라는 것입니다. 크레인은 프랭클린이 과학자로서 자연에 직면했을 때에만 온전히 헌신했다는 이론을 제시하며, 정치에 있어서는 어떤 체계를 전수한 것이 아니라 미국 지도자들이 일반적으로 채택한 경험적 방법을 전수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는 프랭클린의 실용주의가 단순한 처세술이 아니라, 온갖 자연 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들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얻는 과학적 태도에서 비롯되었음을 시사합니다.
현대적 재해석: 자본주의 윤리의 원형과 그 비판
프랭클린 자서전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은 DH 로렌스와 막스 베버로부터 나왔습니다. 로렌스는 1923년 『고전 미국 문학 연구』에서 "이제야 내가 왜 벤자민을 싫어하는지 알겠어. 그는 내 온전함과 내 어두운 숲, 내 자유를 빼앗으려 했어"라고 격렬하게 반발했습니다. 로렌스가 제기한 근본적인 질문은 명확합니다. "왜, 도대체 왜 그 코담배 색깔의 작은 덫은 우리 모두를 낚으려 했을까?" 로렌스의 답변은 더욱 신랄합니다. "애초에 인간의 고집 때문에 그런 겁니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철조망 안에 가두는 걸 좋아하죠. 특히 동료 인간들을 말입니다. 우리는 그들을 자유라는 철조망 안에 가두고 일하게 만들고 싶어 합니다."
막스 베버는 1930년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로렌스와는 다른 방식으로, 그러나 동일한 핵심을 지적했습니다. 베버는 프랭클린의 윤리가 "점점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을 최고선으로 삼으며, 이것이 "개인의 행복이나 효용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완전히 초월적이고 절대적으로 비합리적으로 보입니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인간은 돈을 버는 것, 즉 획득을 삶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는 것에 지배당합니다. 경제적 획득은 더 이상 인간의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수단으로써의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베버가 주목한 것은 프랭클린이 자서전에서 칼뱅주의자였던 그의 아버지가 젊은 시절에 늘 강조했던 성경 구절, "자기 일에 부지런한 사람을 보았느냐? 그는 왕들 앞에 설 것이다"(잠언 22:29)를 인용했다는 점입니다. 베버는 "현대 경제 질서 속에서 돈을 버는 것은 어떤 직업에 대한 미덕과 숙련도의 결과이자 표현이며, 이러한 미덕과 숙련도는 프랭클린 윤리의 진정한 알파와 오메가"라고 결론지었습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프랭클린 식 수사법으로 응답한다면, 그는 은유의 전환을 시도할 것입니다. 로렌스가 사용한 '철조망(억압)'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지도(안내)'라는 긍정적 이미지로 즉각 치환하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예술적 숭고함을 논하는 상대에게 '종이와 펜, 석탄'이라는 물질적 기반을 들이밀며 논의를 지상으로 끌어내는 실용주의적 냉소를 발휘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조기 은퇴 사례를 들어, 도덕적 절제가 곧 최대의 자유(여가)를 가져다준다는 실증적 증거를 제시하는 결과 중심적 논리로 마무리할 것입니다.
프랭클린 자서전은 미국적 성공 신화의 원형이자, 자본주의 윤리의 교본이며, 동시에 그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의 대상입니다. 시어도어 파커와 우드로 윌슨이 찬양한 실용적 지혜는, DH 로렌스와 막스 베버에게는 인간을 억압하는 도덕적 철조망이자 자본주의적 획득 충동의 원형으로 읽혔습니다. 프랭클린의 문체적 전략, 즉 겸손을 가장한 우위, 은유의 전환, 실용주의적 냉소, 결과 중심적 논리는 여전히 현대 비즈니스와 자기 계발 담론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이 가상 편지가 보여주듯, 프랭클린의 수사학은 비판자들조차 그의 논리 구조 안으로 끌어들이는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출처]
CliffsNotes: Critical Opinions of The Autobiography of Benjamin Franklin
https://www.cliffsnotes.com/literature/a/the-autobiography-of-benjamin-franklin/critical-essays/critical-opinions-of-the-autobiography-of-benjamin-frankl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