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글자로만 배워서는 결코 다 이해할 수 없는, 몸이 먼저 기억하는 역사가 있습니다. 저에게 1980년 5월의 광주는 단순한 교과서 속의 한 페이지가 아닙니다. 저는 그해 5월, 어머니의 뱃속에서 그 뜨겁고도 차가웠던 광주의 공기를 함께 호흡하며 태동했습니다. 비록 직접 눈으로 목격한 파편화된 기억은 없지만, 제 몸속 흐르는 핏줄 어딘가에는 그날의 함성과 눈물, 그리고 긴박했던 공포와 숭고함이 세포 하나하나에 각인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늘 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한국인 최초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한강 작가의 이름이 불리고, 특히 『소년이 온다』가 그 중심에 서게 되었을 때, 저는 단순한 기쁨을 넘어 형언할 수 없는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마치 제 가족의 일처럼, 아니 제 존재의 시작점이 비로소 세상의 인정을 받은 것과 같은 깊은 위로였습니다. 오늘 이 글은 단순히 책 한 권을 소개하는 서평이 아닙니다. 뱃속에서부터 이어진 저의 개인적인 서사와, 2024년 광주 사적지를 방문하며 느꼈던 뼈아픈 성찰을 담아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아주 깊이 있게 파헤쳐 보고자 합니다.
1. 1980년의 태동: 뱃속에서 전해진 소년들의 진동
『소년이 온다』의 화자 중 한 명인 중학생 소년 동호는,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뒤 시신들을 관리하는 상무관으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소년은 죽음이 일상이 된 풍경을 마주합니다. 저는 이 대목을 읽으며 자꾸만 시간을 되돌려 1980년 오월의 어느 날로 돌아갔습니다. 만약 어머니 뱃속에 있던 제가 조금 더 일찍 세상 밖으로 나왔다면, 저 역시 동호와 함께 그 거리에 서 있지 않았을까요?
인간에게는 누구나 생존을 갈구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광주의 시민들은 그 본능을 압도하는 무언가를 보여주었습니다. 총칼이 눈앞에 번뜩이는 역경 속에서도 타인을 위해 주먹밥을 만들고, 부상자를 위해 헌혈 차 앞에 끝없이 줄을 서던 그 용기는 도대체 어디서 솟아난 것일까요? 한강 작가는 동호의 시선을 통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잔인한 폭력과, 가장 지극한 이타심을 극명하게 대비시킵니다. "군인들이 쏜 총알에 맞은 사람들의 몸이 왜 그렇게 무거운지"를 묻는 소년의 순수한 의문은, 거대한 권력이 파괴한 개인의 삶이 얼마나 대체 불가능한 숭고함을 지녔는지를 역설적으로 증언합니다.
저는 생각합니다. 당시 뱃속의 저를 품고 계셨던 어머니가 느꼈을 그 두려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지탱해 준 이웃들의 따뜻한 손길이 없었다면 지금의 저 또한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광주의 역사는 누군가의 특별한 투쟁기가 아니라, 저와 같은 수많은 '동호'들이 지켜내려 했던 평범한 일상의 총합입니다.

2. 2024년 전남도청: 콘크리트 병에 새겨진 흐느낌의 기록
2024년의 어느 뜨겁던 날, 저는 다시 광주 5.18 사적지를 찾았습니다. 수없이 뉴스와 다큐멘터리를 통해 보았던 장면들이었지만, 옛 전남도청 별관의 차가운 콘크리트 벽 앞에 섰을 때의 감각은 이전의 모든 지식을 무력하게 만들었습니다. 복원 작업이 한창인 그곳의 외벽에는, 44년의 세월을 뚫고 나온 선명한 총알 자국들이 수없이 박혀 있었습니다.
그 구멍들은 마치 1980년의 소년들이 내뱉지 못한 마지막 비명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떨리는 손으로 그 차가운 자국들을 가만히 쓸어보았습니다. 울컥 차오르는 눈물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습니다. "세상에 어쩌면 이렇게 숭고할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예견하면서도 끝까지 도청을 떠나지 않았던 이들의 마음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장차 태어날 저와 같은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향한 지독하고도 처절한 사랑이 아니었을까요?
그 총알 자국들은 저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듯했습니다. "너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네가 누리는 이 민주주의의 무게를 알고 있는가?" 소설 속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겪는 트라우마와 죄책감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2024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그날의 숭고한 희생 위에 빚을 지고 살아가는 채무자들입니다. 그 총알 자국은 지워지지 않는 영원한 증언이며, 동시에 우리가 지켜내야 할 가치의 이정표입니다.
3. 나라면 끝까지 싸울 수 있었을까: 목숨보다 귀한 가치에 대하여
『소년이 온다』를 덮으며 가장 오랫동안 저를 괴롭혔던 질문은 이것입니다. "과연 나라면 끝까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울 수 있었을까? 내 하나뿐인 목숨까지 내놓으면서 말이야."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선뜻 "예"라고 답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두렵고, 가족의 품은 따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한강 작가는 독특한 2인칭 화법('너')을 통해 우리를 기어이 그 고통의 현장으로 끌어들입니다. 작가는 그날의 투쟁이 초인적인 영웅들의 전유물이 아니었다고 말합니다. 친구의 시신을 수습하러 나간 중학생, 공장에서 야간작업을 마치고 나온 여공, 아이를 기다리던 평범한 아버지들이 그 주인공이었습니다. 그들은 대단한 사상을 지켜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대우받아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본질을 위해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광주 사람들이 보여준 그 용기는, 고립된 환경 속에서 서로를 믿는 '절대 공동체'의 힘이었습니다. 내가 죽더라도 누군가는 나를 기억해 줄 것이라는 믿음, 나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숭고한 신뢰가 그들을 끝까지 싸우게 했습니다. 이제 저는 질문을 바꿉니다. "나는 그들이 남긴 이 숭고한 유산을 다음 세대에게 온전히 전할 준비가 되었는가?"라고 말입니다. 이것은 목숨을 거는 일만큼이나 지금의 우리에게 중요한 책무입니다.
4. 맺음말: 뱃속의 소년에서 기록의 목소리가 되기까지
1980년 오월, 어머니의 뱃속에서 세상의 폭풍우를 견뎌냈던 소년은 이제 어엿한 사회의 일원이자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2024년 전남도청의 총알 자국 앞에서 마주한 그 묵직한 울림은 제 평생의 지침이 될 것입니다. 한강 작가가 『소년이 온다』를 통해 흩어진 영혼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 모았듯, 저 역시 제가 가진 이 작은 블로그라는 공간에 그날의 숭고함을 정성껏 기록하려 합니다.
기록하는 이유는 결국 '기억의 힘'을 믿기 때문입니다. 기억되는 한 비극은 반복되지 않으며, 기록되는 한 숭고함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직접 그날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일지라도, 우리 몸속에 흐르는 민주주의의 가치는 그날 도청을 끝까지 지켰던 소년들의 목숨값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1980년 오월의 모든 소년에게, 그리고 그 슬픔을 견디며 저를 낳아주신 어머니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여러분은 오늘 여러분의 내면에 어떤 숭고한 조각을 새기셨나요? 긴 호흡의 글, 그리고 저의 아주 개인적인 고백을 끝까지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