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자민 프랭클린의 자서전은 미국 문학의 고전으로 평가받지만, 그가 구사한 유머는 현대 학생들에게 쉽게 다가가지 않습니다. 교사들이 극찬하는 그의 재치를 학생들이 당황스러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글에서는 프랭클린 유머의 특징을 분석하고, 그것이 가진 배타성과 시대적 변화 양상을 비판적으로 살펴봅니다.

프랭클린 유머의 엘리트주의적 성격
프랭클린의 유머는 절제와 아이러니로 특징지어지며, 정교한 사회적 의례가 예의 바른 대화 방식을 규정하던 시대의 산물입니다. 그의 재치는 교묘하고 부드러우며, 언어의 흐름 속에서 주된 통로라기보다는 저변에 깔려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자서전 1부에서 그는 "이성적인 존재로 사는 것은 참 편리한 일이다. 왜냐하면 하고 싶은 모든 일에 대한 이유를 찾거나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라며 세상 물정에 밝은 철학자처럼 행동하며 독자를 현혹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미묘함은 양날의 검입니다. 작가는 프랭클린의 유머가 "지성을 요구"하며,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것을 완전히 놓친다"라고 서술합니다. 이는 유머의 배타성을 세련미로 포장하는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유머가 특정 계층, 즉 교육받은 지식인만의 전유물이 될 때 그것은 소통의 도구가 아니라 권위주의적인 벽이 됩니다. 학생들이 그의 유머에 당황하는 이유를 단순히 익숙하지 않음이나 지성의 부족 탓으로 돌릴 것이 아니라, 프랭클린이 사용한 아이러니라는 장치가 가진 한계를 지적해야 합니다.
프랭클린은 "그런 연기를 위한 내 얼마 안 되는 분별력은 거의 바닥났어"라며 자신을 농담의 대상으로 삼거나, "케이 먼 독에 중독된 돼지처럼 멍하니 서 있었지"와 같은 날카로운 표현으로 독자를 웃게 만듭니다. 하지만 이러한 유머가 대중적 공감대를 형성하기보다는 지적 우월감을 공유하는 수단으로 쓰이지 않았는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필요합니다. 감정보다는 지성을 요구하는 유머는 계급적 분리를 강화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자서전 시기별 유머의 변화와 그 원인
프랭클린의 자서전에서 유머는 대부분 1부와 3부에 집중되어 있지만, 두 부분에서 주로 나타나는 유머의 유형은 뚜렷하게 다릅니다. 1부에서는 자신감 넘치는 시민이 자신을 농담의 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보스턴에서 배를 타고 오는 동안 생선을 먹고 싶은 유혹에 굴복하는 자신의 모습이나, 구운 돼지고기를 보자마자 참지 못하는 케이머의 모습 등 본질적으로 웃긴 장면들을 여러 개 포함시켰습니다. 또한 랄프가 교사라는 직업이 나중에 자신의 명예를 더럽힐 수도 있다고 생각하여 "내가 내 이름을 부르는 영광을 누렸다"라고 말하는 등 공손한 말투의 불완전함에서 효과적인 유머를 이끌어냅니다. 1부의 유머는 풍부하고 다채로우며 비교적 일관적입니다.
반면 3부에는 종종 재미있는 일화, 특히 프랭클린이 과거 대화에서 듣거나 말했던 것을 기억하며 떠올리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화이트필드의 웅변에 감동하여 원래 기부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조지아 고아원 건립에 기부하게 된 이야기나, 홉킨슨 친구가 퀘이커 교도 친구에게 기부금을 빌려달라고 부탁하자 "홉킨슨 친구, 다른 때 같았으면 기꺼이 빌려주었겠지만, 지금은 안 되겠네. 자네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군"이라는 대답을 들은 일화가 대표적입니다. 우체부가 라우든 경의 우유부단함을 "그는 마치 표지판 위의 성 조지 같아요. 항상 말을 타고 있지만, 절대 앞으로 나아가지 않죠"라고 묘사한 것도 3부의 전형적인 유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 대한 동인 분석이 부재합니다. 이는 단순히 나이가 들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프랭클린의 사회적 지위 변화나 자서전 집필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젊은 시절의 자기 희화화가 노년의 여유, 혹은 방어적 태도로 변모한 것인지, 아니면 공적인 인물이 되면서 자신을 직접 드러내기보다 우회적인 방식을 택한 것인지에 대한 역사적·심리적 배경 설명이 보완되어야 설득력이 높아집니다.
자서전 속 유머의 사회적 기능 재조명
프랭클린은 간결함이 재치의 핵심이라는 것을 명심하고, 재치 있고 능숙하며 미묘하게 유머를 구사했습니다. 그의 유머는 결코 떠들썩하거나, 적어도 자서전에서는 외설적이지 않습니다. 3부에서 그는 마치 좋은 이야기를 즐겨 들려주는 노인처럼, 그 이야기의 출처가 어디든 상관없이 이야기를 풀어놓는 데 열중합니다. 특히 퀘이커 교도들로부터 마지못해 군사 자금을 얻어내기 위해 자주 계략을 꾸몄던 인물로서, 퀘이커 교도들이 처음 미국으로 항해할 때 선원들이 공격자들과 싸우는 것을 도왔던 윌리엄 펜의 비서에 대한 이야기를 즐겨 읽습니다. 나중에 펜이 폭력을 행사한 그를 질책하자, 그는 화를 내며 "하지만 당신은 당신이 위험하다고 생각했을 때 제가 배에 남아 싸우는 것을 돕도록 기꺼이 허락하셨잖아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러한 일화들은 단순한 웃음거리를 넘어 프랭클린의 정치적 입장과 전략을 드러냅니다. 그의 재치가 단순히 우아한 장식이었는지, 아니면 복잡한 정치적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었는지를 논한다면 훨씬 강력한 비평이 될 것입니다. 프랭클린은 퀘이커 교도들의 평화주의와 식민지의 군사적 필요성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했고, 유머는 이러한 긴장을 완화하는 효과적인 도구였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의 유머가 가진 사회적 기능, 즉 이념적 대립을 부드럽게 중재하고 설득하는 수단으로써의 역할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결국 프랭클린의 유머는 형태적 분류를 넘어 그것이 작동한 역사적 맥락과 권력관계 속에서 재해석되어야 합니다. 그의 재치는 엘리트주의적 배타성을 지니면서도, 동시에 정치적 생존을 위한 전략적 도구였다는 양면성을 인정할 때 비로소 온전한 이해가 가능해집니다.
이 에세이는 프랭클린 유머의 형태를 분류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유머가 가진 사회적 기능이나 변화의 원인까지 파고들지는 못했습니다. 프랭클린의 절제된 재치는 18세기 정교한 사회적 의례의 산물이지만, 동시에 그것이 만든 계급적 장벽과 정치적 효용을 함께 고려해야 온전한 평가가 가능합니다.
[출처]
CliffsNotes - Critical Essays: Franklin's Humor: https://www.cliffsnotes.com/literature/a/the-autobiography-of-benjamin-franklin/critical-essays/franklins-hum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