톨킨의 『호빗』에 등장하는 빌보 배긴스는 인간의 절반 정도 크기에 수염이 없고 발에 털이 난 호빗족으로, 전형적인 영웅 서사를 거부하면서도 성장하는 독특한 인물입니다. 그는 호빗굴의 안락함을 사랑하는 평범한 존재에서 출발하지만, 모험을 통해 용기와 지혜를 발휘하는 인물로 변모합니다. 하지만 그의 성장은 단순한 영웅으로의 변모가 아니라, 영웅이 되기를 끝내 거부하는 자기 정립의 과정이라는 점에서 더욱 흥미롭습니다.

비영웅적 성장: 선형적 서사를 넘어선 복합적 변화
빌보 배긴스의 성장 과정은 흔히 소심함에서 용기로 나아가는 전통적인 영웅 서사로 해석됩니다. 실제로 소설은 빌보가 어느 날 아침 집 바로 앞에서 파이프 담배를 피우는 평온한 장면으로 시작하며, 그는 13명의 드워프들에게 커피, 케이크, 스콘, 잼, 타르트, 파이 등으로 구성된 애프터눈 티를 대접하는 등 빅토리아 시대와도 매우 흡사한 정확히 명시되지 않은 시대의 안락한 가정생활을 즐기는 인물입니다. 꼼꼼한 성격의 그는 드워프들이 자신의 집을 어지럽히는 것을 싫어하고, 2장에서 손수건과 파이프를 잊어버리는 바람에 거의 집으로 돌아갈 뻔할 정도로 일상의 질서에 집착합니다.
그러나 빌보의 변화를 단순히 '겁쟁이에서 영웅으로'의 구도로 읽는 것은 톨킨이 설계한 인물의 복합성을 놓치는 일입니다. 빌보는 어머니 쪽 툭 가문에서 물려받은 모험심과 안락함을 추구하는 배긴스 가문의 기질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합니다. 책의 전반부에서 그는 종종 불운하고 다소 겁쟁이 같은 모습을 보이며, 간달프와 드워프들과 합류하라는 강요에 못 이겨 떼를 쓰다가 화를 내고, 고블린들을 피해 도망칠 때 도리에게 업혀가기도 합니다. 2장에서는 트롤의 주머니를 털려다 발각되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그럼에도 빌보는 점차 뛰어난 기지를 발휘합니다. 그는 트롤의 비밀 동굴 열쇠를 찾아내어 검을 손에 넣고, 5장에서는 투명 반지를 발견하며 골룸과의 수수께끼 대결에서 대등한 실력을 보여줍니다. 8장에서 그는 자신의 검으로 거미줄에서 벗어나면서 자신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되며, 많은 전설적인 영웅들처럼 자신의 검에 이름을 붙입니다. 중요한 점은 빌보가 리더십을 키워나가지만 지배하지 않고, 전투를 피하지만 도망치지 않으며, 보물을 얻지만 소유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2장에서 그는 홀로 스마우그의 소굴로 내려가 소린의 열쇠로 외로운 산의 문을 여는 방법을 처음으로 알아내고, 보물에서 잔과 아르켄스톤을 훔쳐냅니다. 이는 전통적 영웅의 행위이지만, 빌보는 영웅이 되려는 욕망보다는 동료들에 대한 책임감에서 행동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도덕적 선택: 윤리적 결단의 불안정성과 인간성
5장에서 빌보가 골룸을 죽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는 장면은 그의 윤리성을 보여주는 핵심적인 순간으로 자주 인용됩니다. 그는 그것이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골룸은 무장하지 않았지만, 빌보는 투명화 능력을 갖추고 무장했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은 흔히 '올바른 도덕적 선택'의 예시로 해석되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복합적인 감정과 동기가 작동한 결과입니다.
빌보의 선택은 단순히 고결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두려움, 동정, 계산, 본능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그는 자기 자신이 어떤 존재가 될지 두려워했기 때문에 멈춘 것이기도 합니다. 투명 반지라는 압도적 우위를 가진 상황에서 무방비 상태의 생명체를 죽이는 것이 자신을 어떤 인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불안이 그의 손을 멈추게 했습니다. 이는 윤리적 결단이지만, 동시에 자기 정체성에 대한 두려움이기도 합니다. 빌보는 영리할 뿐만 아니라 윤리적인 인물로 묘사되지만, 그의 윤리성은 확고한 도덕 원칙보다는 불안정한 인간성에 더 가깝습니다.
이러한 내적 갈등은 9장에서 더욱 분명해집니다. 간달프가 떠나고 드워프들의 운명이 빌보의 손에 달려 있는 상황에서, 그는 용기와 지혜를 발휘하여 에스가로스로 탈출할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이는 영웅적 결단이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이 떠맡은 책임에 대한 반응입니다. 빌보는 어려움에 직면하면 두려움을 느끼고 끊임없이 베이컨과 달걀을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행동하는데, 이는 그가 용감해서가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행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했기 때문입니다. 6장에서 드워프들이 빌보를 점점 더 존경하게 되는 것은 그의 고결함 때문이 아니라, 그가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일을 해내는 모습 때문입니다. 이러한 복합성은 빌보를 단순한 도덕 교훈의 인물이 아닌, 실제로 갈등하고 고민하는 입체적 존재로 만듭니다.
귀환 후 정체성: 성장과 사회적 소외의 역설
다섯 군대 전투 이후, 빌보는 호빗굴로 돌아와 떠났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삶을 살게 됩니다. 다만 스마우그의 보물을 나눠 갖게 되어 돈이 더 많아졌고, 집으로 돌아온 후의 삶은 이전보다 훨씬 더 기이하고 툭 가문 사람다운 삶을 살게 됩니다. 이는 흔히 '원점회귀'나 '평온한 결말'로 해석되지만, 실제로는 톨킨 특유의 보수적 세계관이 드러나는 복잡한 지점입니다.
빌보는 모험을 통해 성장했지만, 샤이어 공동체는 그 성장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는 세상을 경험했음에도 사회적으로는 주변인이 되고, 괴짜 취급을 받습니다. 그가 파이프 담배를 피우고 풍성하고 맛있는 소박한 음식을 즐기며 잘 꾸며진 호빗굴을 사랑하는 일상으로 돌아간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일상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는 더 이상 평범한 호빗이 아니라, 평범함 속에 숨은 비범함을 간직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샤이어는 그 비범함을 기이함으로만 받아들입니다.
이는 모험이 개인을 변화시키지만 사회를 변화시키지는 못한다는 톨킨의 세계관을 보여줍니다. 빌보는 스마우그와 맞서 싸우고 싶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감하게 나아갔고, 스마우그의 약점을 간파하여 바르드의 화살이 명중하도록 기여했습니다. 하지만 그 영웅적 행위는 샤이어에서는 인정받지 못합니다. 그는 험난한 여정을 헤쳐나가며 자주 배고픔을 느낄 때에도 소박한 영국식 음식에 대한 기억이 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여주었지만, 정작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 집은 더 이상 완전히 그의 것이 아닙니다. 빌보의 성장은 사회적 인정이 아닌 내적 자기 확립으로 완성되며, 이는 영웅 서사의 전형적 결말인 '귀환 후 환영'과는 거리가 멉니다.
빌보 배긴스의 인물 분석은 단순한 영웅 성장 서사를 넘어, 비영웅적 성장의 가능성, 도덕적 선택의 복합성, 그리고 개인의 변화와 사회적 인정 사이의 간극을 드러냅니다. 그는 영웅이 되기를 거부하면서도 필요한 순간 행동하는 인물이며, 확고한 윤리가 아닌 불안정한 인간성 속에서 옳은 선택을 해내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결국 성장했지만 공동체로부터는 소외되는 역설적 결말을 맞이하며, 톨킨이 제시하는 현실적이면서도 쓸쓸한 성장의 의미를 체현합니다.
[출처]
CliffsNotes - The Hobbit Character Analysis: Bilbo Baggins: https://www.cliffsnotes.com/literature/h/the-hobbit/character-analysis/bilbo-baggi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