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은 단순한 범죄 소설이 아닌 인간 내면의 철학적 갈등을 탁월하게 그려낸 걸작입니다. 라스콜니코프가 제시한 평범한 인간과 비범한 인간 이론은 헤겔의 철학과 초인 사상을 녹여낸 복잡한 명제이며, 그의 범죄는 이론의 실험이자 인간 본성에 대한 깊은 탐구입니다. 이 글에서는 라스콜니코프의 초인 이론이 지닌 철학적 배경과 그 불완전성, 그리고 소냐를 통해 드러나는 인간 본성의 본질을 살펴보겠습니다.

헤겔 철학과 도스토예프스키의 초인 구상
도스토예프스키는 라스콜니코프의 이론을 구성하면서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의 철학을 의도적으로 불완전하게 차용했습니다. 헤겔적 초인 개념의 핵심은 '고귀한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명제입니다. 라스콜니코프는 이 논리를 자신의 범죄에 적용하여 늙은 전당포 주인을 사회의 해로운 기생충으로 규정하고, 그녀를 제거함으로써 더 큰 선을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는 전당포 주인의 돈으로 학업을 마치고 인류에 봉사하거나 가난한 가족들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작가는 라스콜니코프가 이론을 완전히 정립하기 전에 살인을 저지르도록 설정했습니다. 이는 젊은 지식인들이 다양한 이론의 영향을 받고, 그것들을 충분히 분석하지 않은 채 적용하는 현실을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실제로 라스콜니코프는 '살인이 인류를 위한 것'이라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비범한 인간은 인류를 초월해야 하며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모순적 진술을 반복합니다. 이러한 내적 모순은 그가 이론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증거이며, 역설적으로 그를 구원의 가능성으로 이끄는 결정적 요인이 됩니다. 독자로서 나는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그의 이론에 설득당했지만, 동시에 마음 한구석에 남은 작은 의문이 점점 커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의도적으로 심어놓은 이론적 균열이었던 것입니다.
죄와벌에 나타난 의지와 고립의 인간심리
스비드리가일로프는 또 다른 형태의 초인 이론을 구현한 인물입니다. 그는 '자신의 의지 외에는 어떤 의지도 없으므로, 모든 제약에서 자유로워질 때까지 의지를 행사해야 한다'고 추론합니다. 처벌할 수 있는 힘이 없다면 자신의 의지를 온전히 행사할 자유가 있다는 이 논리는 극단적 개인주의의 표본입니다. 스비드리가일로프는 15세 소녀를 강간하고 하인을 죽음으로 몰아가면서도 처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욕망 충족을 위해 타인의 고통을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초인의 시험은 완전히 홀로 설 수 있어야 하며, 타인의 욕망에 자신의 의지가 좌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의지의 주장은 필연적으로 인간을 사회로부터 고립시킵니다. 라스콜니코프가 자신의 의지를 주장하려 할 때, 그는 나머지 인간들과 완전히 단절된 자신을 발견합니다. 이 끔찍한 고독은 견딜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라스콜니코프의 이러한 심리적 고립이 단순한 범죄의 결과가 아니라, 인간 본성 자체가 지닌 사회적 욕구와의 충돌임을 깨달았습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관계 속에서 존재하며, 절대적 의지의 주장은 곧 인간성의 포기를 의미합니다. 라스콜니코프가 결국 다시 인간의 일부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초인 이론의 실패가 아니라 인간 본성의 승리였습니다.
라스콜니코프와 소냐: 불완전함과 양심의 대비
라스콜니코프 자신의 이론은 헤겔과 다른 초인 사상들을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도 독창적 해석을 더했습니다. 그는 모든 인간을 평범한 사람과 비범한 사람, 두 범주로 나눕니다. 평범한 사람은 복종하며 살아야 하고 법을 어길 권리가 없지만, 비범한 사람은 어떤 범죄든 저지르고 법을 어길 권리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비범한 사람들이 새로운 사상, 즉 '새로운 말'을 발할 재능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문명을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어가는 위대한 인물은 일반 법에 복종해서는 안 되며, 새로운 법칙을 창조하므로 자신의 발견을 전 인류에게 알리기 위해 소수를 제거할 권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라스콜니코프는 나폴레옹을 끊임없이 언급하는데, 나폴레옹이 자신의 계획 완수를 위해 대담한 행동들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그러나 라스콜니코프는 살인 당시 이러한 이론들을 하나의 일관된 틀 안에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개별 요소들은 갖춰져 있었지만 연결 고리가 부족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살인을 저지를 용기가 있는지, 즉 자신의 의지가 강한지 시험해 보기 위해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책을 세 번 읽으면서 나는 라스콜니코프의 범죄가 처음엔 놀라웠지만 점차 당연하게 느껴졌고, 그의 이론에 설득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소설 막바지로 갈수록 그가 완전한 이상을 가진 인물이 아니라 극도로 불완전한 존재임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불완전함을 보완해주는 인물이 바로 소냐입니다. 천대받던 소냐는 모든 것을 감싸안는 인간 본성의 마지막 양심이며, 도스토예프스키가 제시한 진정한 인간성의 구현체입니다. 소냐는 이론이 아닌 사랑과 용서로, 라스콜니코프를 인간의 세계로 되돌립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인간 심리를 극도로 섬세하게 보여주는 천재입니다. '죄와 벌'은 한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인간 마음속에 존재하는 심리적 갈등을 탁월하게 묘사한 작품입니다. 라스콜니코프의 초인 이론은 결국 불완전한 인간이 만든 불완전한 사상이었으며, 진정한 구원은 이론이 아닌 인간 본성의 회복에서 찾을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인간은 모두 불완전하며, 그 불완전함 속에서 서로를 감싸안는 양심이야말로 우리가 지켜야 할 마지막 가치입니다.
[출처]
Critical Essays: The Übermensch or Extraordinary Man Theories / CliffsNotes: https://www.cliffsnotes.com/literature/c/crime-and-punishment/critical-essays/the-ubermensch-or-extraordinary-man-theories